'The Love Song of J.Alfred Prufrock' T.S Elliot의 작품으로, 고립과 외면을
그린 작품이다. 뭐, 나는 그닥 시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영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시절에도 이러한 인간의 고질적 문제가 늘 존재 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참 아이러니컬 한 것은, 문명의 발달과 과학
기술력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회에서 외면당하며 느끼는 고통과 이에 대한 해결책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이러한 문명의 발달으로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은 점점
더 커 나가고 있다. 크게는 사회에서, 로컬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개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사회의 변모로 인해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닌 .. 마치 하나의
instrument로 대체되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사전을 찾아 보면, Human Being의 뜻을 단지 '인간'이라고 정해져 있다. 근데, 우습게도 Human 또한 인간이다. Being- 즉, 인간 본연의 모습(감정을 가지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 정의 한다면,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그냥 Human으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어느 덧 Human의 모습이 어떻게해서든 사회의 일원으로 그나마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야되는 불쌍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정작 그 본인들은 싫지만, '나는 이게 좋아'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사회 및 커뮤니티 안의 한 볼트가 되어 어느 강력한 screw driver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볼트로 만들고, 힘없이 웃는다.
한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내머리가 굵어지면 굵어질 수록, '사람 내음'을 맡을 수가 없다. 내 자신도
자신이지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사람 냄새'를 맡기가 힘들어 진다. 마치 소수점까지 떨어지는
수학 공식 처럼, 나도 그들에게는 볼트로, 그들도 나에게는 볼트만으로 인식되어진다는 것이,
안타깝다.
T.S Elliot 또한 이러한 인간들의 고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묘사를 했지만, 정작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시의
주인공인 Prufrock 또한 이러한 번뇌의 해답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만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리곤 힘없이 다시 그 삶속으로 들어간다.
철학적 의미로서의 희극은,
이전에도 기술한 바와 같이, 주인공이 자신의 미래를 내다 보지 못한채 결말이
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비극의 철학적 의미는 주인공이 자신의 미래를 인지를
하고 결말을 내는 연극을 일컷는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보았을때, 우리의 인생은
분명 '희극'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생활은 '비극'
이 아닐까.










